천주희 ; 글쓰기 학교 “청년은 말할 수 있는가” 강사

 

우리는 일상에서 타인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타인과 함께 머문다는 건, 때로 경쟁과 실패와 혐오와 질책을 견디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의 상황이나 목소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한국의 ‘청년’은 견디는 삶이 더 익숙합니다. 청년에게 말하지 못하도록 ‘침묵을 강요하는 삶’이 ‘견디는 삶’의 다른 이름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가족, 일터, 사회에서 경험하는 아픔은 켜켜이 쌓여 타인에게 다가가기를 두렵게 만듭니다. 글쓰기 학교 첫 시간에도 그랬습니다. 처음 만난 이들에게 나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나를 어디까지 드러내야 할까, 소개하는 것 마저도 피곤하고 지쳐있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로 청년으로, 여성으로, 학생으로, 노동자로 서로 마주하며 매주 2~3시간 씩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하루 8시간~10시간 일을 하고, 야근으로 잠이 부족한 데도 틈틈이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발췌하고, 글을 썼습니다. 매주 글을 나누고, 글 속에 녹아든 삶도 나누고, 돌아가서 또 책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녹록치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가장 힘든 건,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의 삶과 직면하는 과정이었을 겁니다. 글쓰기 학교에는 콜센터 상담원, 디자이너, 퇴사자, 개발자, 대학(원)생,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언어에 경청하며 기꺼이 곁에 머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곳에는 수록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와 삶이 있었습니다. 함께 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중도에 하차해야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스스로 외면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용기내서 풀어보고자 시도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터에서 경험하는 성차별이야기, 군대에서 경험한 상처, 지역 격차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함께 산다는 것의 상상력, 사회생활, 장르 문학을 좋아하기까지 각자 삶을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기 위해 어제를 성찰하고,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의 나를 다져가는 나와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수업이 끝날 무렵, 우리는 어떻게 하면 동료에게 더 적절한 비평을 할 수 있을지, 더 좋은 자료를 알려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으로 성장해있었습니다. 8주 동안 우리는 그 사이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 학교에서 저의 바람은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에 있지 않았습니다. 참여자들이 자신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글을 쓰는 시간을 내어 삶을 성찰하고 집중하는 데서 오는 쾌감을 느껴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글쓰기 학교는 글쓰기 기술만 나누지 않았습니다. 때로 해질녘 자갈밭 위에 앉아 고기와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늦은 밤까지 삶과 글감을 나눴습니다. 때로 매주 성장하는 동료를 보며 타인의 성장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말이 타인의 언어와 만나 풍성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이 경험이 오래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는 이 경험을 시작으로 새로운 관계를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씨앗이 움트려는 준비는 아닐까요.

수업을 시작할 때, 송경동 시인의 <말더듬이의 노래>로 문을 열었습니다. 마지막 ‘오늘의 밑줄’은 허수경 시인의 <농담 한 송이>로 대신합니다. 지금도 말과 삶을 섞으며 한 줄 한 줄 써내려 갈 당신의 밤에, 이 시를 전합니다.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 허수경, <농담 한 송이>

“조합원 응원기금 만들기 프로젝트”에 동참하시면,

글쓰기학교에서 제작한 문집을 발송해 드립니다. (바로가기 링크)

 


 

작가소개

문화연구자 겸 작가. 낮에는 직장인으로, 밤에는 작가로 생활하고 있다. 삶의 좌표가 이동하면 그 곳에서 질문을 던지고 글을 쓴다. 대학원에 다닐 때는 학자금 대출과 부채 문제를, 백수일 때는 예술가로서 빈곤한 삶을, 지금은 직장인으로서 여성의 노동을 고민한다. 대표저서로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사이행성)가 있고, 그 외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쓴 『노오력의 배신』(창비), 『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북바이북), 『대통령의 책 읽기』(휴머니스트)가 있다. 현재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일하며,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