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하 ‘스’) : 류아님, 토닥은 어떤 계기로 알게 되셨나요?

류아(이하 ‘류’) : 토닥은 처음에 오마이뉴스 보고 가입했어요. 그때 아마 오마이뉴스에 참참(2기 이사장) 인터뷰가 났을 거예요. 그러면서 청년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경제공동체가 있다고? 그래서 경제적 연대를 하자고? 무이자? 관계망을 기반으로 하는 청년연대? 하여튼 그런 식으로 기사가 났었어요. 근데 저에게 경제적 독립 내지는 생존이라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중요한 이슈였거든요.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인데 그것을 위해서 삶이 너무 팍팍한 상태였고. 그런데 그 기사를 보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일단 한번 가입해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죠.

아까 말씀드렸지만, 채무자 집안이기도 했고, 그래서 빚이라고 하면 괜히 무서웠거든요. 빚 하면 같이 떠오르는 고리의 이자, 딱지, 차압 이런 이미지가 있는데 ‘그래도 여기는 괜찮지 않을까?’. ‘내가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빚지 않고 살아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

스 : 이때까지 한 번도 빚져 본 경험이 없으세요? 학자금 대출도 안 받으시고요?

류 : 학자금 대출 딱 한 번 받았어요.

: 그러면 알바로 다 감당하신 거네요?

류 : 네. 실용음악과 편입할 때 학자금 대출을 한번 받았어요.

스 : 대출은 한국장학재단에서 해주는 거 말하는 거죠?

류 : 아니요. 그때 당시에는 학점은행제 학교는 한국장학재단 사업대상이 아니었어요. 지금은 바뀌었더라구요. 그러니까 저는 그때 유행하던 상호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건데. 그때 이자를 연 24%를 냈어요. 지금 돌아보면 엄청 비싼 이자를 냈던 거죠. 전 부당한 이자를 냈다고 생각을 해요.

스 : 24%요??? 그래도 학자금대출인데?

류 : 네. 200만 원을 받았는데, 이자가 24%니까 한 달에 이자만 4만 원씩 나가는거예요. 한 2년을 그렇게 했죠. 그 대출은 실용음악과 다니다가 휴학하고 일해서 다 갚았어요.

스 : 저는 24%의 이자율을 붙여서 학자금대출이라는 상품으로 판매가 되었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되네요. 아무리 제2 금융이라지만 적어도 ‘학자금대출’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홍보를 할 거면 적어도 10% 이하로 금리를 설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류 : 어휴. 사실 학자금이라는 이름만 붙인 거지, 그냥 신용대출이었죠 뭐. 아… 사실 그게 딱 ‘학자금 대출’이라는 이름의 상품은 아니었어요. 다만 이 돈을 빌리면 사용할 수 있는 것의 용도 중에 ‘학자금 대출’이 포함되어 있었던 거죠. 그 사람들은 학자금 대출상품을 취급했다 라기 보다는 어떻게든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위해서 너희들이 우리에게 이런 돈을 빌려 가면 이런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홍보였죠. 그런데 괄호 열고 이자는 똑같다. 괄호 닫고. (웃음)

스 : 그럼 그렇게 오마이뉴스 기사 보고 가입했구나, 2년 전에. 그럼 그동안 토닥 대출 이용하신 적 있으세요?

류 : 아뇨. 한 번도 없어요. 저는 조합비랑 출자금도 연체 거의 안 됐을걸요? 성실한.(웃음)

이야기를 듣다보니 서민에게 금융기관의 문턱이 높다는 말이 새삼 실감 났다.  쩝.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24%의 이자라니. ㅠㅠ 

(사진: 참여연대)

토닥은 환기의 장소


스 : 토닥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뭐예요?

류 : 저한테 토닥은 환기를 할 수 있는 장소에요.

스 : 환기요?

류 : 네. 왜냐하면, 토닥에 처음 가입했을 당시에 저는 좋게 말해도 ‘깨시민’ 정도의 상태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신과 이 사회에 대한 뭔가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내 삶을 규정하는 언어를 찾지 못한 상태라고 할까요. 그런데 지금은 저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어느 정도 찾은 것 같아요.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계급의식이 되게 강하고, 페미니즘 의제에 굉장히 공감이 가고.

스 : 페미니스트고?

류 : 페미니스트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가 제 삶을 돌아봤을 때, 사회적 약자들에게 굉장히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위치들에 계속 서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지금도 자칫하면 빈곤층이 될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고, 비정규직이고. 좋게 말해 비정규직이고. 그냥 ‘프리터’. 뮤지션으로서 생계유지가 전혀 안 되고 있으니까…. 또 저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이고. 그런 상황들이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는 약자성에 굉장히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위치로 저를 몰아갔다고 생각을 해요. 예를 들어 성소수자라던가, 경제적 빈곤층의 문제와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토닥에 막 가입할 때만 해도 저는 저를 규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는 상태에서 이런저런 정보들만 있었던 것 같아요. 왜 그런 단어들 있잖아요. ‘귀농’. 혹은 ‘협동조합’

스 : ‘도시농업’.

류 : 어. ‘도시농업’ 막 그런 거. 그런데 이전에는 그런 얘기들이 나랑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거든요. 관심은 있었지만 그걸 실제로 살아내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여기 와보니까 그렇게 실제로 살아내는 사람들.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아, 생각보다 가까이 있구나.’

가끔가다 볼 수도 있고. 왜 토닥에서 실제로 제주도로 귀농해서 귤 농사짓고 있는 사람의 귤을 판매하고 막 그러잖아요. 그러고 각자 소규모로 창업한 가게들에서 쿠폰도 쓸 수 있고. 당장 참참, 이파람만 하더라도 귀농 준비하고 있고.

류아와 인터뷰를 마치고 난 그 다음 주에 조합원인 ‘참참’과 ‘이파람’ 부부는 강원도 홍천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토닥내에서 농업에 관심이 있거나 실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제법 되는 편이다.

귤농사짓는 흔한 토닥 조합원

(사진출처 : ‘딴따라농부’)

이제는 추억이 된 소모임

‘도농교류기획단’

류 : 토닥에 오면 그런 것들이 되게 환기가 되는 거예요. ‘아, 이게 나랑 전혀 다른 세계에서 이뤄지는 이야기들이 아니라 내 옆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구나.’ ‘그들이 있구나.’ ‘불가능하지 않은 이야기구나’ 하는 그런 생각들이 들어요.

스 : 그러니까 주류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한 삶’, ‘좋은 삶’과는 다른 ‘대안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게 류아한테 환기가 되는 거군요. 본인이 실제로 살지는 못하더라도 말이죠.

류 : 네, 그렇죠. 이제 제가 마음만 먹으면 동참할 수 있는 거리까지 온 거예요. 기사만 보고 ‘카더라’ 하는 게 아니라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살 수 있겠구나’라는 것에 대한 희망? 그런 거를 토닥에서 찾았던 것 같아요.

류 : 그리고 페미니즘 담론을 만들어 나갔던 모든 과정도 기억에 남아요. 이번에 왜 성평등 규약이 제정됐잖아요. 그게 다른 단체들과 비교해서도 그렇게 늦은 편이 아니거든요. 사실 토닥에서 페미니즘이 이슈화가 된 게 재작년 겨울이잖아요. 그게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소모임이 만들어지고.

성폭력이슈가 없는 단체를 찾기 힘들겠지만; 2년전 토닥에서도 한 남성 조합원이 다른 여성조합원들 다수를 스토킹하는 일이 발생하였고, 이를 공론화 하는 과정에서 일부의 조합원이 SNS상에서 가해자를 두둔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건은 해당 조합원이 징계절차 이후에 제명됨으로써 일단락되었지만, 이후, 피해에 공감하는 조합원들이 모여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고 사건재발을 막기 위해 토닥 내부의 조직문화를 쇄신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 노력에 일환으로 2017년에는 총회에서 성평등규약이 만장일치로 인준되는 한편, 조합내 성평등을 추구하는 상설기구인 ‘성평등위원회’가 설치되었다.

류 : 여성주의 소모임과 관련해서는 (사실 저도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적 지식은 1도 없지만), 제가 그 이슈의 당사자로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또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 그건 맞아. 그건 틀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참 소중했죠. 특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고, ‘내가 느꼈던 것들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었어’라고 그들의 존재를 확인했던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형성하고 다시 그것을 조합 전체에 공론화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요구했을 때, 그게 단체운영에 반영이 되고, 더 나아가 그게 조합 내의 어떤 규약으로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경험하면서 참 좋았어요. 내가 생각하는 게 좋은 공동체로의 방향이 반영되고, 어떤 공동의 합의로 만들어지고 그것의 결과물로써 시스템,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그 경험들이 참 좋았어요.

‘아 여기는 그래도 ‘소수자 담론’, 혹은 ‘대안적 삶’ 이런 게 실제로 문화로써, 시스템으로써 자리 잡을 수 있구나‘ 하는 그런 긍정적인 가능성을 토닥을 보면서 느낀 것 같아요,

토닥을 만나기 전에는 그냥 나 혼자서 정보들을 찾아보고, 나 혼자만 관심을 가지고, 그냥 나만 열심히 지키는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예를 들어 채식 같은 것도. 다른 주변의 사람들은 1도 관심이 없는데 나만 혼자 열심히 지켜.(웃음) 내가 열심히 설명을 해줘야 ‘아 그런 게 있어?’ 내지는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있다가. (웃음)

마찬가지로 페미니즘도 내가 머릿속에 생각만 하고 있었고. 특히나 교회에서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것들이 여기 토닥에서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고, 그런 시스템이 세워지고 규칙이 만들어지는 것을 본 것이 굉장히 저에게 해방감을 주고, 희망을 발견하게 만드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스 : 이쯤 해서 이번에 나오는 앨범을 좀 소개해 주시죠.

류 : 사실 제가 8월 초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캐나다로 떠나는데, 그 전에 지금까지 나만의 정서로 소화해 내고 썼던 곡들을 정리하고 발표하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음반 작업을 시작했어요. 작년에 팀을 나오기 전까지는 팀에서만 할 수 있는 음악을 했었는데, 이 CCM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제약들이 있었거든요. 메시지적인 측면에서요.

류아는 솔로로 활동하기 전, ‘디바소울’이라는 4인조 여성그룹에서 4년, 그 이후에는 3명의 1인 뮤지션들이 모여서 만든 ‘엔소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에서 활동했다.

스 : (CCM은)확실히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제한적이죠.

류 : 네, 가사에서 다룰 수 있는 게 제한적인 장르였고, 팀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제가 잘할 수 있는 저만의 색깔을 내기가 어려웠는데. 작년에 ‘엔소이’를 하면서 처음으로 솔로활동을 깔짝깔짝 한 거죠. ‘엔소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되, 세션을 공유하면서 이루어지는 형태였어요. 그렇게 활동을 하면서 팀이 아닌 저 혼자 낼 수 있는 색깔과 정서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작년까지 팀에 있으면서는 그걸 발휘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스 : 그럼 곡은 다 만들어 놓으신 건가요?

류 :

스 : 몇 곡 정도?

류 : 한 10곡 정도요.

스 : 작업물이 더 많은데 10곡으로 추린 건가요?

류 : 아뇨, 딱 10곡이에요. 저는 곡 하나를 쓰는데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타입이에요. 그런데 또 한 번 써지면 확 써져서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결과물이 나오는 타입.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른데 저는 그런 스타일이에요.

일단 그런 작업물 중의 하나인 ‘4월의 봄’이라는 곡을 첫 디씽(디지털싱글)으로 내요. 다음달 4월에,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가이드만 공개를 해서 이런 곡들이 실릴 거라고 홍보를 하고 앨범제작비를 펀딩을 받아서 제작할 생각이거든요. ‘4월의 봄’을 디씽으로 먼저 내는 이유는 이게 세월호 관련된 곡이여서 4월에 내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 해서요.

조합원 3명이 각각 작사,작곡,디자인으로 참여한 싱글앨범

스 : 곡 설명을 해주신다면?

류 : 4월의 봄은 토닥의 조합원인 메이 씨가 저에게 가사를 세월호를 보면서 자기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쓴 시라고 하면서 곡을 붙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먼저 가사를 줬어요. 그게 재작년. 그게 재작년 겨울? 아니 재작년 여름쯤 일 거에요. 그 시를 봤더니 시 자체는 슬프면서 아름다운데, 제가 지금까지 썼던 타입의 가사가 아니어서 곡을 붙이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사실 가사는 운율이 딱딱 정해져 있어야 하거든요. 글자 수가 정해져 있으면, 그게 곡을 붙이기 쉬운 가사에요. 그런데 메이가 준 가사는 스토리 텔링적인 요소가 강하고 운율이 딱히 없었어요. 그래서 상당히 많이 고민하다가 1년에 걸려서 곡을 썼죠.

그러고 나서 작년에 같이 ‘문화창작공간 다락’ 이랑 ‘엔소이’랑 조인을 해서 세월호 관련한 추모공연을 했을 때, 곡을 완성해서 처음으로 공연했어요. 그때는 음원을 제작할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안 돼서 그냥 넘어갔었는데, 이번에 앨범 내는 김에 발표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 음원제작을 하게 됐어요. 마침 음원제작에 도움을 주는 편곡자 분도 계셨고. 재킷 디자인을 토닥 조합원인 이파람한테 부탁해서 받았죠. 이렇게 토닥 콜라보레이션이 탄생하였네요.

떠날 결심을 하다


스 : 아까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캐나다로 떠나실 계획이라고 했는데,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류 : 캐나다는 사실, 한국에서 사는 게 너무 지쳐서…. 너무 지쳐서 사실 쉬고 싶어서 가요. 왜냐면 너무 팍팍했으니까. 한국에서 음악을 하면서. 어떤 경제적 기반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해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투잡, 쓰리잡, 포잡. 소위 부업들을 계속하고 그러면서 뭔가 정주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게 굉장히. (지금 돌아보면 굉장히) 고된 일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사회적 안전망이 1도 없는 한국에서 부모에게서 독립하겠다고 고군분투 해왔어요. 부모에게 경제적인 의존을 하느니 차라리 ‘타임푸어’ 인생을 택하겠다고 말이죠. 그런 몸에 고단함을 택하겠다는 삶을 10년 이상 유지를 해왔으니까 듣기만 해도 너무 팍팍하잖아요. 그래서 솔직히 약간 한국에서 사는 게 지친 상태이고. 어떤 환기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확실하죠.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독립된 삶을 꿈꾸었으나, 30이 다 되어서야 겨우 부모와 공간적인 분리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외국에서 청년들이 일찍 독립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안전망이 잘 갖춰진 결과라고 설명하며, 한국에서 개인의 독립, 특히 저소득층 청년의 독립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논증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사회가 사회의 기본구성단위를 ‘개인’이 아닌 ‘가족’에 두고 있다는 사실에 서로 폭풍공감했다. 필자는 얼마전 서울시에서 하는 ‘청년두배통장’인지 뭐시기 신청하러 동사무소에 갔다가 부모님 신분증을 가져오라고 하는 통에 아주 혼쭐이 난 경험이 있다. 대체 부모님 차량등록증이랑 집계약서는 왜 제출하라는 거야. 같이 살지도 않는데. 샹.

스 :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돈이 있어야 예술한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류 : 저는 제가 음악을 하면서 두 가지 강력한 편견과 맞서 싸우는 삶을 몸소 살아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첫 번째는 예체능은 머리 안 좋은 애들이 하는 거야. 그리고 두 번째는 예체능은 돈 좀 바쳐주는 애들이 하는 거야.

저는 음악을 하기로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정말로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작년 초반에는 더는 음악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왜냐하면, 음악에 대한 원을 어느 정도는 푼 것 같아서요. 지금까지는 자기 치료적 성격으로 음악을 해온 측면이 있었는데 치료는 어느정도 한 거 같아. 음악적인 커리어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올 정도는 쌓았고(물론 그게 원하는 장르가 아니어서 그렇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악을 한답시고 내 삶이 너무 지쳤어.

그래서 이제는 좀 딴 것을 하면서 대안적인 가치, 대안적인 삶을 시도해 보면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거예요. 예를 들면 귀농을 한다거나 그런 삶이요. 그러니까 사회에서 요구하는 빚을 내서라도 규모를 크게 살라는 그런 규모 적인 삶을 역행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토닥을 통해서 목격했으니까 나도 ‘음악을 하지 않고, 그런 삶을 추구하며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근데 작년에 제가 인간관계와 일, 양쪽에서 상당히 힘들었거든요. 그 시간을 보내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내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과 느낌을 가장 날 것인 상태로 (여기서 날것이라는 것은 표현이 서툴다거나 거칠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솔직하게 내보일 수 있는 표현으로서의 날것이에요) 오해없이 사람들한테 다이렉트로 전할 수 있는 툴이 저에게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는 자신이 말로 무언가를 표현했을 때, 그 말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인식에 의해 좌우되는 것(오해내지는 오독)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류 : 제가 아무리 정교하게 표현을 하려고 해도 오해가 생기고, 그래서 내 표현들이 산산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어요. 특히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의 업무가 너무 고돼서… 사람이 육체적으로 힘들면, 그냥 자고 싶고, 아무 생각 없이 있고 싶고, 말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 의지 자체도 상당히 떨어지구요. 그런 상태에서 작년에 활동하던 팀을 나온다거나, 혹은 연애가 끝나면서 겪었던 정서적인 충격들이 있었고 그걸 소화해나가고 있는 과정에서, 그걸 사람들한테 표현하는데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된 거예요. 일단 몸이 너무 힘드니까.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가 너무 힘들고. 그리고 아무리 표현을 해도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고,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내가 이만큼을 표현하고 싶으면(손짓으로 큰 원을 만들어 보인다) 내가 요만큼만 표현하게 되고 또 거기서 사람들은 요만큼만 알아듣게 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곡해하게 되는 그런 상태가 너무 싫어서. 나는 사실 ‘언어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게 사실 굉장히 적합지 않은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그러다 보니 비교 우위적인 관점에서 나의 감정을 가장 다이렉트로 전달할수 있는 방법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음악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음악 작업을 할 시간이 없는 거에요. 한국에 사는 한은.

스 : 슬프다. 너무.

류 : 하하. 그게 너무 싫어서. 그게 너무 이제는 지쳐서. 이제는 스스로에게 좀 침잠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그것을 위한 환기, 휴식. 또는 쉼을 위해 외국으로 가는 거죠. 다들 그렇게 좋다는 외국. 나도 한번 경험해 보자. 그렇게 남들이 원하는 탈조선. 나는 얽매인 것도 없고. 이제 팀도 관뒀고. 연애도 끝났는데 한번 해보자. 이렇게.

스 : 기약 없이 가시는 거죠?

류: 네. 그렇죠. 사실 워킹비자는 1년인데 계획은 아무것도 안정해놨어요. 그냥 어디서든 그냥 먹고살게끔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가요. 사실 지금 일하는 OO에서(해외 유명 커피 브랜드) 일하는 것도, 그냥 어디 가서든지 먹고 살고 있게끔 할 수 있도록 이 일을 배운 거거든요.

‘과연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출처 : MBC다큐 ‘행복찾아 3만리’)

스 : 마지막으로 토닥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류 :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아쉬울 게 또 뭐가 있을까요?(호탕한 웃음) 저는 토닥을 통해서 경제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굉장히 많이 발견한 것 같아요. 실제로 토닥 가입하게 되면서 음, 제가 일상에서 찾는 또는 사용하는 단어들 자체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우선 ‘공동체’, ‘조합’. 무슨 ‘협동조합’. 혹은.

스 : ‘연대’

류 : 네, ‘연대’. 근데 그 연대가 이전에는 굉장히 꽉 짜이고 결속된 있는 그 무언가라고 생각을 했는데. 어떻게 보면 토닥의 연대는 상당히 느슨하잖아요. 그러니까 얼기설기. 촘촘히 짜여져 있는 보수 개신교에서 말하는 그런 형태가 아니라.

스 : 그러니까 개인의 독립성이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형태로서의 결속.

류 : 네. 네. 그쵸. 그러니까 개인이 말살되는 형태의 독재에 가까운 하나됨. 전체주의가 아니라요. 토닥에서 맺게 된 관계들을 생각해보면, 개인이 충분히 존중을 받으면서 느슨하게 서로 연대를 하고 서로의 관심사나 분야가 굉장히 다르지만 같은 주제가 있으면 또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연대. 예를 들어 ‘만나서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싶다’ 혹은 ‘같이 모여서 뭐 그냥 작업실을 공유해보자’ 그럴 때, 그게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연대. 서로 다를지라도, 서로 개개인의 다름을 충분히 존중받으면서도 공통의 이슈나 관심사에 대해서는 유니티(통일성)를 이룰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공동체의 모습. 그런 가능성을 많이 발견한 거 같아요. 토닥에서 지금까지 받았던 경험들이 좋고, 기억들이 좋아요.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고 싶은 그런 연대체인 것 같아요.

스 : 네, 일단 이것으로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저는 얘기를 쭉 들으면서 류아가 성장해 온 과정들, 그리고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들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앞으로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표현해 낼 결과물들이 많이 기대되는 것 같아요.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합니다.

류 : 감사합니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전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는데 다음번에  더 친해지면 하기로 마음먹으면서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내 말이 오해되지는 않을까’ 내지는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될까’ 하고 생각하는 건 언제나 작고 약한사람들의 몫인것 같다는 생각이 불연듯 들었다. 어쩌면 그런면에서 나나 그나 비슷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아, 사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너의 이야기에 왠지모르게 위로받은 것 같아서 고맙다”였다. 쑥쓰.)

인터뷰 이후 필자는 그가 토닥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것들. ‘느슨한 연대’, ‘위로’, 그리고 ‘함께성장하는 것’.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전보다 더 잘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p.s : 앨범을 제작하기 위한 펀딩페이지를 오픈했다고 하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참여바란다. 연대가 뭐 별건가. 이런게 연대지.

류아 앨범제작 펀딩페이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