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치

 

강철인간이 되고 싶었습니다-만, 이번 생은 틀렸나 봅니다. 취업의 기쁨도 잠시, 다년간의 사회생활 끝에 나 는 내가 개복치만도 못한 생명력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푸를 청(靑), 봄 춘(春)이라고 아직 인생의 봄 쯤 와 있을 나이로 보이는데 그 무슨 겨울 서리같은 소리냐고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구온난화를 견 디는 북극의 곰처럼 작금의 생태계를 견뎌내는 것이 몹시 힘들다고 느껴집니다. 주변 인간들은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이 라고 합니다. 맞는 말 같아요. 제 친구들은 다 잘 참고 살더라고요. 무엇을 참는지는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이 곳 에 산다면 당신도 참아왔고, 참고 있고, 참게 될 테니까요. 아무튼 주변 사람들은 노오오오력도 하고 아프기도 하며 청 춘을 즐기는데 나는 참지도, 즐기지도 못하고 있으니 전부 내 탓입니다. 자꾸 내 탓이다, 내 탓이다 하다 보니 모든 일 을 초월하고 부처가 된 기분도 듭니다. 그런데 부처님도 왕자였대요. 금수저였다는 소리죠, 아무튼.

아무튼 다시 돌아가 내 얘기를 조금 더 해 볼게요. 나는 부모님 말씀대로, 선생님의 지시대로 급식을 먹으며 그럭저럭 지내던 학생이었습니다.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어 자연스럽게 학식을 먹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대학을 다 니다 보니 또 자연스럽게 아르바이트도 하고, 빚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되었다’는 서술어인데, 나는 분명 내 인생의 진로를 능동적으로 선택해 왔는데도 어느 순간 이것이 내가 선택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 대학에 갔던 것 같은데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 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고, 나는 노오오오력하지 못해서 자는 시간을 줄이지는 못했거든요. 대학만 가면 된 다고 나에게 최면을 걸어왔는데, 입학한 지 한 학기 만에 최면에서 깨더군요. 덕택에 나는 스무 살에 산타클로스에게 또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건 다 취업을 어렵게 만든 신자유주의 산타클로스 때문이라니까요) 지금까지 낸 입학 금과 등록금, 그리고 급식을 먹으며 공부했던 시간이 아까워 나는 공부를 안 하면서도 대학을 떠날 수 없었어요. 대학 말고는 갈 곳이 없기도 했고요. 그렇게 꾸역꾸역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했어요.

처음 1년은 누가 보아도 알만한, 이름있는 기업과 공기업 위주로 원서를 썼습니다. 여자는 취업이 어렵다, 여자는 공기업이 최고다 같은 격언을 새기며 성실히 준비했습니다. 대학 때도 안 먹던 학원 밥을 먹으며 시험을 준비했고,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를 써댔습니다. 쉽지는 않더군요. 서류전형에서 탈락한 것도 수십 차례였고, 직무면접에서 도 많이 탈락했어요. 공기업 최종 면접에 들어갔을 때, 면접관은 인생계획을 묻더군요. 저는 무난하게 대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취업이 된다면 신입사원으로 성실하게 근무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다양한 공부를 하겠습니다. 3년 간 회사 일에 몰두하며 바쁘게 지낸 뒤, 입사 3년차 쯤 결혼을 하고-“까지 말했는데, 면접관이 들을 필요도 없다는 표 정으로 말을 잘랐습니다. “입사 3년 차에 결혼을 하면 회사생활이 쉽진 않겠네.” 면접 당시에는 무척 긴장해 ‘쉽지 않 다’는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으나 탈락 통지를 받고 나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취업준비 일 년 반째인 베테랑 취준생 친구는 제게 말했어요. “야. 가뜩이나 여자는 결혼이랑 임신 때문에 안 뽑으려고 하는데 면접장에서 그렇게 얘기하면 어떡하냐? 거기 공기업이라 여자라고 차별 못 해서 일부러 면접 때 그런 질문 하는 거야. 결혼 계획 물으면 신고당하니까 인생계획이라고 에둘러서 묻는다던데?” 나는 그럼 거짓말을 해야 하냐 고 되물었지만 친구는 태연하게 대답했어요. “사회생활하면 어차피 매일 거짓말 하는데, 사회생활 하고 싶어서 거짓말 하는 게 뭐 어때? 잠깐 참으면 월급 받으면서 살 수 있는데.” 같이 학식을 먹던 친구의 입에서 ‘사회생활’이라는 단어를 몰라 몰라, 사회생활이라니 9 들으니 무척 낯설더군요. 아리송했지만 친구의 말을 곱씹으며 일 년 더 취업준비에 매진했습니다. 다행히 꽉 찬 나이 서 른에 저는 수도권의 공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어요. 취업준비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기업은 ‘진보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집단’이라는 평과 ‘숨 막힐 정도로 담당자의 업무 능력과 책임감을 강조하고 평가함.’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어요. ‘진보적인 조직문화’라는 것은 이 나라의 기업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이고, 업무 능력을 관리받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기계발이 가능하다는 뜻 같아서 저는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나는 홍보실에 배치되었습니다. 직원이 많은 기업은 아니었지만 공기업답게 담당하는 업무의 사업규모와 예 산이 몹시 컸지요. 홍보실은 총 10명이었는데, 언론사를 만나는 팀과 회사의 사업을 자체적으로 홍보하는 팀으로 나뉘어져 있었어요. 1년간 실에 배치되어 수습직원으로 근무하다가 팀에 배정되는 구조였습니다. 저의 사수는 입사한 지 8 년 된 과장이었어요. 조씨 성을 가진 과장님을, 홍보실의 사람들은 ‘조선배’ 혹은 ‘조과장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조과장 님은 입사 첫 날 점심시간에 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회사만큼 신입들한테 기회를 많이 주는 곳은 없을걸? 딱 봐도 고집 있는 성격 같은데 만족할거야. 여자라고 차별대우하지도 않고. 그런데, 복치씨 다이어트해? 왜 그렇게 밥을 깨작 깨작 먹어? 사회생활하면서 다이어트한다고 여자인척하고 그러면 안 된다. 치마도 가능하면 입지 말고, 최대한 털털하게 어울려. 내가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이야.” 친구들에게 취업 턱을 내느라 전 날 과식했던 것이 소화되지 않아 밥을 천 천히 먹었습니다. 만난 지 겨우 세 시간이 되었는데, 저도 잘 몰랐던 저의 성격과 식습관, 옷차림을 조언해주는 조과장 이 퍽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신입을 바라보는 베테랑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려나, 헤아려보았지요. 조과장은 비혼인데 다가 취미가 거의 없는 워커홀릭이었습니다.

제가 입사한 지 한 달 째,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수도권 지역에 속한 공기업이기에 해당 지역의 집권당에 따라 회사 예산의 규모가 차이를 보였지요. 회사의 현 대표는 진보적인 인사로 분류되는데, 이 지역은 보수정당이 우세한 지역이라 늘 긴장감이 있었어요. 최근, 회사의 활동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긍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면서 대표는 기세를 몰아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당선되어 예산이 늘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총선을 일주일 앞 둔 어느 날, 야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데 조과장이 다가와 묻더군요. “복치씨는 누구 뽑을거야?” 저는 대답하기가 조금 곤란해 적당히 둘러댔습니다. 과장은 애초에 내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자신의 이야기 를 계속 이어가더라고요. “우리 회사 잘 되려면 누구 찍어야 하는지 알지? 복치씨도 계속 사회생활하고 싶으면 잘 생각 해.” 저는 달리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총선을 하루 앞둔 날, 사무실에 남아 점심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매일 긴장을 하다 보니 건강이 나빠져 헬스 클럽에 등록을 하고 식단관리를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조과장은 몸이 안 좋다며 사무실에 남아있었습니다. 조과장은 책상 너머로 도시락을 꺼내는 저를 보더니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복치씨, 아직도 다이어트해? 뺄 데가 어디 있다고? 사회생활 하면서 다이어트하면 몸 상해, 인간관계도 상하고. 적당히 먹고 운동하면 빠지는데, 너무 극단적으로 빼려는 거 아냐?” 트레이너와 상의하며 몇 달째 실천 중인 계획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조과장은 저에게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너무 마른 몸만 좋아해. 잘못된 미의식이 건강도 망치고 사회도 병들게 하는 건데, 쯧쯧. 딱 보기 좋은데 다들 너무 뺀다니까. 복치씨는 참 페미니즘인지 그런 거 들어 본 적 없나? 인터넷에서 보니까 페미니즘 알 고 그러면 다이어트하지 않아도 되고 당당한 여자로 산다던데.”

조과장은 얼마 전 회사에서 진행한 건강검진 프로그램에서 음주를 자제하고 운동과 식단조절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조과장은 병원에서는 늘 같은 말만 한다며 의사의 코멘트를 비웃었습니다. 자신은 지금 자신의 모습에 무척 만족하고 건강하기 때문에 이러한 의사의 코멘트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면서요. 저는 그 말 을 신뢰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를 잘 돌보고, 자신의 욕구와 행복에 예민한 사람이라고 보기에 조과장 10 청년은 말할 수 있는가 은 지나치게 타인의 삶을 많이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엇을 먹는지, 얼만큼 먹는지, 왜 그것을 먹는지 에 대해 자주 관심을 보였고, 늘 애정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복치씨는 가만히 보니까 입이 짧더라. 맏딸이라 고 하지 않았어? 맏딸들은 별로 안 까다로운데, 복치씨는 좀 특이하네. 근데 사회생활하려면 뭐든 잘 먹고 그래야 해. 까다롭게 굴면 찍혀.” 조과장이 제게 권하던 간식을 몇 번 거절했더니, 그 뒤로 늘 저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국회의원 총선 다음 날, 예상을 뒤엎고 회사가 속한 지역에서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당선되었습니다. 나는 두 거대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이라 생각했어요. 회사는 무척 들뜬 분위기였어요. 조과장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복치씨. 당연히 잘 투표했겠지? 나이가 어린 만큼 생각도 젊겠지, 뭐. 아무튼 다행이야. 내년 예산이 엄청 늘 거래. 역시 사회생활에서는 줄을 잘 서고 봐야 된다니까. 대표님이 현명했던 거지.” 불현듯,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보았던 회사에 대한 평가가 떠올랐습니다. 이 회사가 진보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던 코멘트는 수평적 인 의사결정구조나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조직의 분위기를 의미하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회사 임원 중 많은 수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한 정당의 후보와 무척 관련이 깊다는 의미였습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회사 임원들이 그 후보와 연관이 깊은 것은 그 후보의 정치철학이나 정당의 정책때문이 아니라 출신 지역과 출신 대학원이 같기 때문 이었습니다.

“복치씨도 줄 잘 서. 사회생활 길게 하려면.” 틈만 나면 내게 사회생활에 대해 강의를 해주는 조과장도 그 날 만큼은 그리 밉지 않더군요. 갑자기 무엇인가 꽉 막힌 기분이 들어 조과장의 말이 잘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때부터였어요, 제가 <사회생활>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구역질이 나던 것이. 조과장은 별 대꾸를 하지 않는 제가 마음에 들었는지 하루에 한 번씩은 제게 와서 사회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보통 점심을 먹고 난 뒤, 오전업무를 보고하고 오후일정을 브리핑할 때 거쳐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온라인에서 직장생활에 관한 신문기사를 몇 개 본 뒤, 그거 아냐며 제게 말을 꺼내곤 했습니다. “복치씨, 그거 알아? 요새 젊은 사람들은 여자라고 기죽고 그런 게 없대. 그러고 보면 나도 페미니스트였던 것 같아. 여자라고 힘든 내색 안 하고 남보다 더 일하려고 노력하고, 회사 일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면 서 살았으니까. 그런데 복치씨, 요새 좀 우울해? 무슨 일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회생활하면서 자기 개인사가 일에 영향 끼치도록 하면 안 돼. 복치씨는 젊으면서 왜 그렇게 패기가 없어?”

제가 기억나는 회사생활은 여기까지예요. 조과장이 사회생활이라는 단어를 내뱉자마자, 구역질이 올라와 화 장실로 뛰어갔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에요. 급하게 뛰어가다가 문에 부딪쳤다고 하더라고요. 생명이 위독할 정도는 아 니었지만 큰 수술을 하고 나서야 저는 겨우 의식이 돌아왔어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쉬었더니, 병원에 오기 전 일까지 기억해내게 되더라고요. 정 선생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입원이 길어지게 되자 회사는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는데, 어느 날은 조과장을 비롯한 사무실 사람들이 문병을 왔어요. 조과장은 제게 오랜만이 라며 인사를 건넸죠. “복치씨가 갑자기 다치는 바람에 나도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사회생활하면서 그런 일은 처음 이었다니까. 그런데 갑자기 왜 그랬던 거야? 평소에 건강관리 좀 잘 하지. 너무 안 먹고 그래서 우울증 같은 게 온건 아 니었을까? 안 그래도 그 때쯤 복치씨가 너무 우울해 보여서 눈치 보느라 나도 힘들었어.” 조과장과 사무실 사람들이 다 녀간 뒤 저는 시지프스처럼 매일 반복되는 고문을 받는 꿈을 꾸었어요. 꼬박 며칠을 자고 일어나서야 많은 것이 기억나더군요.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것도 앞으로 제 상담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잊기 전에 기록해두려고 하는 거예요. 선생 님이 학회에서 돌아오시면 돌아온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 상담도 하고, 약도 먹고 싶어요. 잠을 좀 푹 자고 싶거든요. 기 억이 생생해진 데다가 조과장이 병문안 온 뒤로 잠자기가 더 힘들어졌어요.

그리고 다시 사회생활을 할 준비도 해야 하니까요. 어서 돌아오세요, 선생님. 개복치드림.

 

“조합원 응원기금 만들기 프로젝트”에 동참하시면,

글쓰기학교에서 제작한 문집을 발송해 드립니다. (바로가기 링크)

 


작가소개 및 후기

저는 매일 일탈을 꿈꾸는 개복치입니다. (조선에 거주 중이에요.) 무척이나 모험심이 강하고, 적극적인 성격..이면 좋으련만 그저 규칙적인 일상에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제 일상의 장소가 바뀌기를 바랄 뿐이죠. 기내식을 두 번쯤 먹은 뒤 도착할 수 있는 나라에서 모르는 말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낯선 간판을 보는 일상을 가져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출근할 곳이 생긴 뒤로 편안함과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매일 번갈아 가며 느낍니다. 또,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저에게 무척 관심을 가진다고 느껴질 때면 누구도 나를 모르는 세상에 가고 싶더라고요. 친밀함이 싫은 것은 아닌데, 한국적 정서가 허용하는 친밀함의 경계에 의문이 들 때가 많았어요. 나이를 먹은 사람 중에 자신으로부터, 타인으로부터, 부모로부터 진짜 ‘독립’해서 성장한 사람은 별로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요.

청년연대은행 토닥에서 마련한 <비자본 글쓰기 공방>은, 그래서 선택한 탈출구 중 하나였습니다. 마감도 제일 늦고, 숙제도 다 못한 불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다만, 계속 알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좋은 책도 몇 권 읽었고요. 제가 쓴 글에 대해 분명하고 따뜻하게 코멘트 해주는 사람들 덕에 연민 없이, 패배감 없이 저의 글을 돌아볼 수 있었고요. 나름 괜찮은 계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