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내일 눈뜨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기 전에 이런 주문을 외웠었다. 매일 무기력했고 매일 망상에 빠졌었다. 2015년 임금체불로 퇴사한 후 집에서 몇 달 동안 고민에 고민만 거듭했다. 내 문제점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이 40살, 비혼, 니트족, 각종 병에 시달리는 몸, 무엇보다 자존감 바닥……. 이러니 매일 아침에 눈뜨지 않았으면 했겠지.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그 어디도 가기 싫었고 이렇게 누워 있다가 암모나이트처럼 굳었으면 좋겠다했다. 나이만 꽉 차다 못해 넘쳤는데, 전혀 어른답지 못했고 어른의 삶을 살고 있지 않았다. 비참했다.

우연히 남동생 방에 있는 책 한권이 눈에 띄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지은이 하야마 아마리(가명: 나머지·여분으로 스스로 부여한 1년 치의 삶을 뜻한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 하야마 아마리, 예담 (2012년)

나도 이 책의 주인공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시간 앞에서 괴로워하기보다는 시한부적인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서른아홉 살 어느 날의 결심이다. 일단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 늘 하던 부정적인 생각 말고, 1년간의 유예기간이 있다면 이처럼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살까부터 생각해봤다. 우선 나는 내 모든 것이 마땅치 않았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답 안 나오는 무의미한 정신 소모 말고 현재 혼자 하나하나 해결할 문제에 대한 해답 위주로 생각해봤다. 전에는 사고가 주로 자학과 자책이었다면 이를테면 공대생같이, 아래와 같이 현실과 맞닿는 해결방식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 모든 문제점에 맞게끔 말이다

[싱글 SOLO]

*save 돈을 아끼고 모아라

☞내가 결혼제도가 맞지 않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중에 폐지 줍고 다니지 않고 가족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려면 경제력이 필수다.

*organize 재무 체계화

☞돈이 없음 안 써야하는데 돈이 없어도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여행 등을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해서, 빚이 쌓일 수밖에 없는 소비환희형 인간이었다. 꼭 교정해야할 나쁜 습관이었다.

*labor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랑 단절되지 않고 심리적 소속감을 느낀다. 점점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고립된 생활 2년째가 되니 그냥 외로운 한 사람의 ‘섬’이 되더라.

*overcome 심리적 외로움, 경제적 압박극복

☞나이 마흔에 여기저기에 징징거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들 살기 바쁘다. 내 정신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붙잡아야했다.

이렇게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하자. 하나씩 도장 깨기 하는 심정으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 우선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자신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사소한 거부터 시작했다. 11시나 12시 기상 시간을 조금씩 당겨 봤다. 건강과 활기를 되찾으려면 아침이 필요했다. 그리고 늦은 기상으로 아침에 부모님께 듣기 싫은 잔소리를 여러 차례 들어야했다. 한 달반이나 두 달 사이에 연습 삼아 일어나는 시간을 조금씩 당겨 최소 9시에는 일어나는 시간으로 변경했다.

오랫동안 사회생활 하느라 내 감정, 상처받은 내 마음을 확인하는데 시간을 썼다. ‘처세’ 라는 이름으로 사회생활 하는데 염증을 느껴서이다. 여러 회사를 전전하고 감정노동을 오래해서인지 냉동인간마냥 감정이 차가워져 있었다. 시니컬한 걸 넘어 타인에게 감정이입을 잘 못했다. 내 생애 가장 분노에너지 ✕ 들끓는 시기였다. 내 안에 그득한 독부터 빼내야 했다.

★아래의 표를 보면 나의 변화가 한눈에 보인다. 글로 3년간의 행적과 구구절절한 사연은 이루 말할 수 없어 간단히 표로 만들어 봤다.

<연도별 변화>


어른은 이래야 한다는 ‘당위적 사고’에 많이 힘들어 했다. 사회 기준에 미달되어 어중간하게 사회에 휩쓸려서 살아가느니, 인생의 방향키를 나에게 맞춰 살고자 했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사회가 짜놓은 구조 속에서 억지로 끌려다는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인생의 방향키를 잡고 가는 사람이다. 위의 표 대로 처음부터 기획서 쓰듯이 시간을 살아낸 게 결코 아니었다. 한 치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손으로 발로 직접 뛰어다니면서 체득한 나만의 로드맵이다. 이렇게 3년 살아내니 불가항력인 문제 외에는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어졌다. 이전에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워서 인생의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 이제는 다르다. 아침이 기다려지고 기대가 된다. 이제는 인생을 나만의 방식으로 주도하면서 살아서이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정의이다. 다만 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싶을 뿐, 되고 싶지는 않다. 되어가는 과정 속에 의미를 찾을 뿐이지, 어른의 무게를 지고 가면서 그 무게에 무릎을 꺾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을 충실히 살아갈 뿐이다. 오늘 하루를 1인분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많은 어른의 어깨가 가벼워지지 않을 까 싶다. 우리는 아직은 설익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