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꺄르르 꺅~”
창밖 투명한 웃음소리가 2층에 있는 나에게까지 전해진다. ‘뭐가 그렇게 재밌지’ 하며 아래를 내다보면 편의점 벤치에서 학생들이 얘기하는 평범한 풍경이다. 내가 있는 곳은 노량진로 140번지. 공시족들의 소리 없는 전쟁터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분초를 다투며 사는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한복판이다. 하루 종일 공부에 매여 뭐가 좋아서 웃을까 싶다가도 그들이 잠시라도 소리 내어 웃는 게 다행이지 싶다. 출근길에 마주친 그네들 일상생활속도는 빨라 보였기 때문이다. 같은 버스, 같은 건물 앞을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정말 빠르다. 버스에서도 미리 교통카드를 찍고, 내린 후에도 겅중대며 걷는다. 내가 이곳 노량진에 있는 회사 다닌 지 어느새 반년이 다 되어간다. 건물 안에 오피스 공간과 대형학원이 같이 입주해 있다 보니, 점심시간 출퇴근 시간, 잠시 외출하는 시간에도 늘 그들과 마주친다. 그렇다 보니 평생 다 볼 20대들을 다 본 듯싶다. 그만큼 많은 청춘들이 이곳 노량진에 있다.

어제 점심때 근처 사육신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노량진 컵밥거리를 지나간다. ‘명물거리’라는 홍보문구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런 낭만적인 수식어와 그 거리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풍경과 현실적인 이유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한 끼를 값싸게 때울 수 있고, 편의와 시간에 쫓겨 많은 학생들이 ‘서서’ 혼자 먹는다. 걸어 다니면서 공부하는 학생,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전용 헬스센터에서 점심에도 체력단련을 한다. 그렇게 빡빡해 보이는 현실에도 그 안에 푸릇한 젊음이 살아있다. 어떤 목적으로 어떤 마음으로, 이곳 노량진에서 애쓰는 지 각자의 개인사정은 다 알 수는 없어도 그들의 강인함에 매번 놀란다. 내가 늘 목격하고 느끼는, 그들은 절대 약한 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퇴근 때는 노량진을 거쳐 대방동을 지나간다. 대방역 맞은편을 지나갈 때 주황색 컨테이너 안에서 새어나오 는 호박색 불빛이 버스 창밖으로 아롱거린다. 이젠 집만큼 익숙한 곳. 이곳에서만큼은 세상의 중력에 짓눌리지 말라고, 이름 지어진 곳. 무중력지대(서울시가 마련한 청년공간), 그 안에 나의 공동체. 토닥이는 사람들이 있는 ‘토닥’ (관계형성을 기반으로 하는 청년자조금융협동조합)이 있다. 퇴근 때 힘들고 팍팍한 마음이 사르르 녹아든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이곳에는 내게 ‘잘한다’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찬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던 3년 전 가을. 더 추운 계절을 예감하던 그 시간에 어디 한군데 손 뻗을 곳이 없다고 생각됐던 그 때. 몸은 따뜻한 방. 밥은 굶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이 추웠다. 그 시절 나는 토닥을 만나게 되었다.

2015. 5월 다니던 회사에서 임금체불건으로 나왔다. 몇 개월 회사와의 실랑이 끝에 실업급여를 받았다. 10월쯤은 그 실업급여도 떨어져 가던 때였다. 사실은 2013년, 2014년에도 임금체불건으로 노동청·법원·회사를 낀 지난하고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 반복됐다. 여러 차례 반복이 되자. 재취업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부정맥도 왔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가슴이 답답해지고, 친한 지인이나 가족들 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싫어했다. 그때 여성가족부에서 지원해주는 심리상담을 받았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면서 재취업을 천천히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헌데 돈이 떨어지고 있었다. 가끔 책을읽고, 생각을 정리하던 무중력 지대에서 어떤 홍보물을 보았다. ‘청년연대은행 토닥’ 이라고. 비닐을 뜯어보고 내용을 찬찬히 본 후에 바로 가입하고 이곳에서 진행하는 ‘토닥학개론’에 참여했다. 이곳에서 도움(대출)을 받아 재취업 준비를 차근히 할 수 있었고, 생활이 빈곤상태로 빠지지 않아 영세한 회사에 지원하지 않아도 됐다. 단지 돈만 빌린 곳이 아니기에 이곳에 애정을 한층 느낀다. 나조차도 몰랐던 나를 ‘발견’ 해 준 곳이 토닥이기 때문이다. 이 공동체에서 그동안 기존 교육에서 배울 수 없었던 많은 것을 배웠다. 듣기, 공감하기, 돈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 나와 타인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존중, 협력하기 등등. 이곳에서 나는 세상에 베이고 지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힘을 길러 세상에 다시 나갈 수 있었다. 오랜 꿈이었던 책출간도 토닥대출로 준비할 수 있었고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응원 받은 사람이 얼마나 변화할 수 있을지 그 ‘작은 기적’에 다시 한 번 놀란다. 토닥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계형성을 경험함으로써 내 안에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의 머리를 밟고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팍팍한 직장인이 관심 영역이 ‘나’를 넘어 타인, 사회, 정치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고, 활동을 하게끔 만들었다. 노량진과 대방동 그 온도 차가 극명한 만큼, 내가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지, 감사해야 할 게 많은 사람인지 다시금 느끼게 된다. “인생을 결정하는 극적인 순간은 종종 놀라울 정도로 사소하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흔히 인생에서 어떤 큰 사건이 있어야 인생이 변한다 생각한다. 토닥에 갔던 ‘놀라울 정도로 사소한 방문’이 내 인생을 변화시켰다. 이 공동체 안에서 받은 응원을 나는 잊지 않는다. 이곳에서 받은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내 사람들에게 서포터즈가 되어주기를 주저치 않는다. 작고 사소한 응원이 일으키는 기적을 알기에 말이다. 추운 계절. 따뜻함의 온도가 여러 사람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합원 응원기금 만들기 프로젝트”에 동참하시면,

글쓰기학교에서 제작한 문집을 발송해 드립니다. (바로가기 링크)

 


작가소개 및 후기

주말 독립출판업자면서 주중 평범 찌듦 직장인. 2017년 11월 『동네의 남아도는 아가씨(동남아)』출간예정. 뒤늦게 귀여운 스티커, 인형, 팬시에 빠지면서 귀여움의 세계에 빠지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글도 쓰고 돈도 벌어서 Paris에 가고 싶습니다. 장래희망은 귀여운 사람이자, 많이 웃는 사람입니다.

가장 현실적인 참여계기는 ‘독립출판’ 준비하면서 점점 원고가 맘에 들지 않아서입니다. ‘관둘까?’ 싶을 때였습니다. 계속 고치고 또 고쳤지만, 결과물이 맘에 들이 않았습니다. 이러다간 아예 올 스톱 하겠다 싶어서 토닥 글쓰기 학교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에세이 장르를 썼기 때문에 비평적이고 공적 플랫폼에 맞는 글쓰기가 나에게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너무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 글에 어떤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막혔던 원고 포인트, 기승전결, 글 편집 방식, 교정 교열에 대한 팁도 토닥 글쓰기 학교에서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이 11월 넷째 주에 나옵니다. 그리고 저의 시야도 넓혀 주었습니다. 예전보다 노동, 여성인권, 청년 감수성에 가깝게 다가가게 됐습니다.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가슴으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천주희 선생님의 수업 진행 방식에 많은 자극이 됐고, ‘합평’에 대해 즐겁고 기대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합평에 참여했던 기억을 더듬어보게 되면 말입니다. 우리의 두 달, 화요일 저녁 7시 30분을 한동안 못 잊을 거 같습니다. 토닥 글쓰기 학교를 기획, 지원해 주신 모든 관계자분들 감사합니다. 역시 토닥입니다!